Reykjavik, Iceland

Hallgrimskirkja in Reykjavik

15년 전, Reykjavik을 우연히 방문하면서 나의 유럽여행은 시작되었다. 그 당시 가장 저렴한 항공편이 Iceland Air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도시는 내 여행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이렇게 우연히 일어나 내 삶에 의미있는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난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백야를 보았고, 처음으로 Alvar Aalto의 건축공간을 경험했으며,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이 나라에서 두번째로 높은 이 교회 앞에서 80일간의 유럽여행 중 그려질 수많은 스케치들중의 한장을 그리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 도시에 홀로 서 있었다.

Öskjuhlíð in Reykjavik

지난 달 가족들과 함께 Reykjavik을 다시 방문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사진 속에 있다. 그 중 호기심이 가장 많은 이 녀석이 지난번 방문 때 내가 스케치북에 남겼던 교회를 다른 장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Hallgrimskirkja는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의젓한 모습으로 청명한 파란 하늘을 홀로 떠받치며 우뚝 서 있었다. 난 아이의 눈을 통해서 이 교회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관심조차 없었던 것들을 이녀석 덕분에 하나씩 새로 발견하고 배워가고 있다.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당당한 건축가가 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친구가 이 세상에 찾아온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앞으로 이녀석과 함께 세상 곳곳을 함께 여행하며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갈 생각을 하니 흐뭇한 마음에 설레인다.

트럼펫

처음 유학을 왔던 그 해, 우연히 Clark Terry의 공연을 동네 호텔의 작은 Dining Hall에서 보게 되었다. 시각 장애인인 그 흑인 음악가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공연을 위해 마련된 스툴에 앉았다. 비록 나이도 많고 앞도 보질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손바닥만한 포켓 트럼펫을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아직도 선명한 강한 인상과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공연을 본 지 한달이 지났을 즈음, 헌 트럼펫을 샀다. 누군가가 오래동안 사용한 흔적이 구석구석 남겨진 중고 트럼펫이었지만 유학생인 나에게는 큰 부담이 될만한 가격이었다. 당시 컴퓨터를 사야할 돈으로 트럼펫을 샀던것 같다.

16년전에 샀던 그 트럼펫을 최근에 다시 꺼내들었다. 동네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영감을 얻고 창고에 숨어있던 이녀석을 다시 꺼네든 것이다. 오랜만에 소리를 내어보니 역시 쉽지 않다. 처음 트럼펫을 사고 유튜브를 보며 소리를 내어 보려고 별짓을 다 했다. 결국 트럼펫을 샀던 악기상 주인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한달간 네번의 레슨을 받고 나서야 내가 산 트럼펫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뭘 몰라서 그동안 소리가 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 트럼펫으로 참 많은 사람들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 생일만 되면 함께 모인 장소에서 이 트럼펫을 꺼내들고 일년간 연습한 곡들을 연주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견스럽다. 실력도 없는 녀석이 트럼펫을 남들앞에서 불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내가 그랬나 싶을 정도다. 앞으로 그럴 수 있는 날이 또 올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일하는 곳은 2009년에 점심먹다가 난데없는 공연을 했던 사진속의 공원과 가깝다. 이곳을 지날때면 그때 생각이 난다.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나의 뉴욕 첫 직장. 날씨가 따뜻했던 봄날 회사 동료들과 함께 이 공원에서 점심을 먹고 나의 생일축하노래를 그들을 위해 연주했다. 그때 이후로 오래동안 놓았던 트럼펫을 다시 불기 시작하는 것처럼, 예전에 점심을 자주 먹었던 그 공원에 다시 돌아와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는 것처럼, 인생은 돌고 돈다.

2009년 여름 점심시간에

사진을 담는 미술관은 어떻게 생겼을까?

지난 몇달간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밤낮으로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 당선안을 보고 마음속으로나마 축하의 메세지를 보낸다. 건축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그 오스트리아 건축가와 직접 만나 그때 난 이런 안을 내었다고 얘기해줄 수 있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의 건축가의 길… 이제 시작이다.

서울사진미술관 공모전 계획안

Cambridge, MA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살았던 도시에 오랜만에 다녀왔다. 켐브리지란 도시 이름이 참 어색했는데, 이제 미국에 있는 고향처럼 느껴지는 이 도시는 언제나처럼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10여년의 넘은 뉴욕 생활이 마치 한낮의 꿈같이 느껴졌다. 미국에서의 시작점에 돌아오니 그동안의 미국 생활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에 뛰는 점은 내가 참 운이 좋은 녀석이라는 점이었다. 처음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내가 이 나라에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미국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나 있을까.. 학업은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직업은 구할 수 있을까.. 등등의 고민을 하며 왔는데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게 참 고마웠다. 이세상 재밌게 살아볼 수 있게 기회와 격려를 주시는 부모님께 고마웠고, 나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시는 선생님들께 고마웠고, 내가 살아오면서 알고 지내는 수많은 친구들에게 고마웠고, 내 부족함을 지켜봐주는 내 부인에게 고마웠다.

난 요즘 다시 학교로 돌아온 느낌이다.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다. 하고 싶은 것과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다. 아마도 그런 기분 덕에 이 블로그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미국으로 오는 그 비행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내가 되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그때 내 모습도 지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누군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흐뭇하게 지난 10년을 돌아볼 수 있도록 이 작은 공간에 큰 꿈을 가득 채워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오랜만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과 자주 만났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갑자기 젊어진 기분과 함께, 그동안 그사람에게 알려주지 못했던 내 삶의 다양한 일들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요즘 한동안 묶혀두었던 내 책들을 통해서 하고 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미국에서 쓸 첫 살림들을 5개의 박스에 담아 배로 붙혔다. 보스턴에 도착한 지 1달이 더 지나서야 오랜 바닷여행을 짐작할 수 있는 허름한 모습으로 여름동안만 묶었던 집 앞 현관에 도착했다. 박스 하나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산타할아버지 보따리에 담겨져 도착했다. 그 중 3개의 박스 안에는 그 이후 오랜동안 읽혀지지 않을거라는 운명을 알지도 못하는 건축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난 다시 그 책들을 보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책들이기에 반갑고,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다. 지금은 거장이 되어 있는 건축가들이 그 책들 속에서는 지금의 나같은 젊은 건축가들이었다. 그들의 초기작들을 보면서 한 건축가의 초심을 엿볼 수 있고, 그 책들을 처음 들었던 내가 어떤 생각들을 했었는지 발견할 수 있다. 건축 공부를 시작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은 건축가 신입생이다. 같이 공부를 시작했던 많은 친구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뱅글뱅글 스치듯 지나간다. 그들과 오랜만에 만나는 날 난 또 얼마나 젊어지게 될까?

빨간 고추

고추가 잘 익으면 빨갛게 변하는 것, 벼가 잘 익으면 노랗게 변하는 것, 말은 못하지만 그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색을 통해 밖으로 표현하는 것,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새삼스럽다. 나는 지금 무슨 색일까.. 그리고 무슨색으로 변하게 될까?

달리기

달리기는 처음 미국에 와서 생긴 몇 가지 습관 중 하나다. 한국에서 내가 달리기를 즐겼던 기억은 없다. 한국에서 나의 달리기는 대부분 군대에서 아침에 구보를 할 때였거나,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에서 몸을 풀기위해 달렸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미국생활을 시작하면서 타지에서 건강을 챙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서였는지, 아니면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동네에 왔으니 이곳저곳 달리며 구경하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아침마다 항상 조깅을 하시는 어머니를 본받고 싶어서였는지, 처음의 시작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도시를 가던지 항상 내가 달리는 코스가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살게 된 Cambridge에서는 Charles 강을 따라 달리곤 했다. 아침 일찍 달리기를 하다가 홀로 노를 저으며 고요한 강 표면을 가르는 Rowing Boat를 보면, 꼭 다리 위에 서서 그 배가 멀리까지 가는 걸 감상하곤 했다. 주말에는 Carpenter Center까지 달려가 건물을 가로지르는 경사로의 가장 높은 부분에서 팔굽혀 펴기를 하고 돌아오곤 했다. 올 여름에 가족과 함께 시카고를 다녀왔는데, 12년 전 여름인턴을 하던 그 도시에는 나의 흔적이 아침마다 달려가 Michigan Lake 깊숙히 들어간 방파제 끝에서 팔굽혀 펴기를 하던 North Avenue Beach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1년 남짓 살았던 스위스 바젤에서는 주말마다 독일과 스위스를 경계로 흐르는 Weise 강을 따라 달렸다. 독일 쪽의 Weil am Rhein에 있는 Landesgartenschau 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보통 70-80분 정도 걸렸던 기억이 난다.

뉴욕에 처음 와서도 달리는 습관은 나의 아침을 항상 상쾌하게 열어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달리기가 내 삶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에 쫓겨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핑곗거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결혼을 하고 가족이 늘면서 더욱 많은 핑곗거리들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운동은 나의 생활계획표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난 한달 남짓,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10분 거리를 왕복하는 이번 코스는 그동안 달려왔던 코스 중에서 가장 최단거리이다. 달리는 중에 새벽부터 빵을 굽는 곳을 지나는데 그 곳 덕분에 나의 아침은 구수하게 시작된다. 오랜만에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그동안 항상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 생각났다. 지난 10년 남짓 문을 닫았던 conster.net이 오늘 다시 문을 연다. 이 짧은 달리기를 통해서 난 앞으로 또 어떤 것들을 다시 시작하게 될까? 그리고 다가올 10년 동안 또 어떤 새로운 것들을 시작하게 될까? 그 해답들로 이 공간이 채워지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