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달간 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밤낮으로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 당선안을 보고 마음속으로나마 축하의 메세지를 보낸다. 건축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그 오스트리아 건축가와 직접 만나 그때 난 이런 안을 내었다고 얘기해줄 수 있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의 건축가의 길… 이제 시작이다.
Cambridge, MA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살았던 도시에 오랜만에 다녀왔다. 켐브리지란 도시 이름이 참 어색했는데, 이제 미국에 있는 고향처럼 느껴지는 이 도시는 언제나처럼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10여년의 넘은 뉴욕 생활이 마치 한낮의 꿈같이 느껴졌다. 미국에서의 시작점에 돌아오니 그동안의 미국 생활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에 뛰는 점은 내가 참 운이 좋은 녀석이라는 점이었다. 처음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내가 이 나라에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미국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나 있을까.. 학업은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직업은 구할 수 있을까.. 등등의 고민을 하며 왔는데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게 참 고마웠다. 이세상 재밌게 살아볼 수 있게 기회와 격려를 주시는 부모님께 고마웠고, 나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시는 선생님들께 고마웠고, 내가 살아오면서 알고 지내는 수많은 친구들에게 고마웠고, 내 부족함을 지켜봐주는 내 부인에게 고마웠다.
난 요즘 다시 학교로 돌아온 느낌이다.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다. 하고 싶은 것과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다. 아마도 그런 기분 덕에 이 블로그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미국으로 오는 그 비행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내가 되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그때 내 모습도 지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누군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흐뭇하게 지난 10년을 돌아볼 수 있도록 이 작은 공간에 큰 꿈을 가득 채워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오랜만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과 자주 만났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갑자기 젊어진 기분과 함께, 그동안 그사람에게 알려주지 못했던 내 삶의 다양한 일들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요즘 한동안 묶혀두었던 내 책들을 통해서 하고 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미국에서 쓸 첫 살림들을 5개의 박스에 담아 배로 붙혔다. 보스턴에 도착한 지 1달이 더 지나서야 오랜 바닷여행을 짐작할 수 있는 허름한 모습으로 여름동안만 묶었던 집 앞 현관에 도착했다. 박스 하나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산타할아버지 보따리에 담겨져 도착했다. 그 중 3개의 박스 안에는 그 이후 오랜동안 읽혀지지 않을거라는 운명을 알지도 못하는 건축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난 다시 그 책들을 보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책들이기에 반갑고,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다. 지금은 거장이 되어 있는 건축가들이 그 책들 속에서는 지금의 나같은 젊은 건축가들이었다. 그들의 초기작들을 보면서 한 건축가의 초심을 엿볼 수 있고, 그 책들을 처음 들었던 내가 어떤 생각들을 했었는지 발견할 수 있다. 건축 공부를 시작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은 건축과가 신입생이다. 같이 공부를 시작했던 많은 친구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뱅글뱅글 스치듯 지나간다. 그들과 오랜만에 만나는 날 난 또 얼마나 젊어지게 될까?
빨간 고추
고추가 잘 익으면 빨갛게 변하는 것, 벼가 잘 익으면 노랗게 변하는 것, 말은 못하지만 그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색을 통해 밖으로 표현하는 것,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새삼스럽다. 나는 지금 무슨 색일까.. 그리고 무슨색으로 변하게 될까?
달리기
달리기는 처음 미국에 와서 생긴 몇 가지 습관 중 하나다. 한국에서 내가 달리기를 즐겼던 기억은 없다. 한국에서 나의 달리기는 대부분 군대에서 아침에 구보를 할 때였거나,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에서 몸을 풀기위해 달렸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미국생활을 시작하면서 타지에서 건강을 챙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서였는지, 아니면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동네에 왔으니 이곳저곳 달리며 구경하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아침마다 항상 조깅을 하시는 어머니를 본받고 싶어서였는지, 처음의 시작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도시를 가던지 항상 내가 달리는 코스가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살게 된 Cambridge에서는 Charles 강을 따라 달리곤 했다. 아침 일찍 달리기를 하다가 홀로 노를 저으며 고요한 강 표면을 가르는 Rowing Boat를 보면, 꼭 다리 위에 서서 그 배가 멀리까지 가는 걸 감상하곤 했다. 주말에는 Carpenter Center까지 달려가 건물을 가로지르는 경사로의 가장 높은 부분에서 팔굽혀 펴기를 하고 돌아오곤 했다. 올 여름에 가족과 함께 시카고를 다녀왔는데, 12년 전 여름인턴을 하던 그 도시에는 나의 흔적이 아침마다 달려가 Michigan Lake 깊숙히 들어간 방파제 끝에서 팔굽혀 펴기를 하던 North Avenue Beach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1년 남짓 살았던 스위스 바젤에서는 주말마다 독일과 스위스를 경계로 흐르는 Weise 강을 따라 달렸다. 독일 쪽의 Weil am Rhein에 있는 Landesgartenschau 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보통 70-80분 정도 걸렸던 기억이 난다.
뉴욕에 처음 와서도 달리는 습관은 나의 아침을 항상 상쾌하게 열어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달리기가 내 삶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에 쫓겨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핑곗거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결혼을 하고 가족이 늘면서 더욱 많은 핑곗거리들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운동은 나의 생활계획표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난 한달 남짓,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10분 거리를 왕복하는 이번 코스는 그동안 달려왔던 코스 중에서 가장 최단거리이다. 달리는 중에 새벽부터 빵을 굽는 곳을 지나는데 그 곳 덕분에 나의 아침은 구수하게 시작된다. 오랜만에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그동안 항상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 생각났다. 지난 10년 남짓 문을 닫았던 conster.net이 오늘 다시 문을 연다. 이 짧은 달리기를 통해서 난 앞으로 또 어떤 것들을 다시 시작하게 될까? 그리고 다가올 10년 동안 또 어떤 새로운 것들을 시작하게 될까? 그 해답들로 이 공간이 채워지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