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유학을 왔던 그 해, 우연히 Clark Terry의 공연을 동네 호텔의 작은 Dining Hall에서 보게 되었다. 시각 장애인인 그 흑인 음악가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공연을 위해 마련된 스툴에 앉았다. 비록 나이도 많고 앞도 보질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손바닥만한 포켓 트럼펫을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아직도 선명한 강한 인상과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공연을 본 지 한달이 지났을 즈음, 헌 트럼펫을 샀다. 누군가가 오래동안 사용한 흔적이 구석구석 남겨진 중고 트럼펫이었지만 유학생인 나에게는 큰 부담이 될만한 가격이었다. 당시 컴퓨터를 사야할 돈으로 트럼펫을 샀던것 같다.
16년전에 샀던 그 트럼펫을 최근에 다시 꺼내들었다. 동네 교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영감을 얻고 창고에 숨어있던 이녀석을 다시 꺼네든 것이다. 오랜만에 소리를 내어보니 역시 쉽지 않다. 처음 트럼펫을 사고 유튜브를 보며 소리를 내어 보려고 별짓을 다 했다. 결국 트럼펫을 샀던 악기상 주인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한달간 네번의 레슨을 받고 나서야 내가 산 트럼펫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뭘 몰라서 그동안 소리가 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 트럼펫으로 참 많은 사람들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 생일만 되면 함께 모인 장소에서 이 트럼펫을 꺼내들고 일년간 연습한 곡들을 연주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견스럽다. 실력도 없는 녀석이 트럼펫을 남들앞에서 불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생각하면 할수록 정말 내가 그랬나 싶을 정도다. 앞으로 그럴 수 있는 날이 또 올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일하는 곳은 2009년에 점심먹다가 난데없는 공연을 했던 사진속의 공원과 가깝다. 이곳을 지날때면 그때 생각이 난다.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나의 뉴욕 첫 직장. 날씨가 따뜻했던 봄날 회사 동료들과 함께 이 공원에서 점심을 먹고 나의 생일축하노래를 그들을 위해 연주했다. 그때 이후로 오래동안 놓았던 트럼펫을 다시 불기 시작하는 것처럼, 예전에 점심을 자주 먹었던 그 공원에 다시 돌아와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는 것처럼, 인생은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