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과 자주 만났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갑자기 젊어진 기분과 함께, 그동안 그사람에게 알려주지 못했던 내 삶의 다양한 일들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요즘 한동안 묶혀두었던 내 책들을 통해서 하고 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미국에서 쓸 첫 살림들을 5개의 박스에 담아 배로 붙혔다. 보스턴에 도착한 지 1달이 더 지나서야 오랜 바닷여행을 짐작할 수 있는 허름한 모습으로 여름동안만 묶었던 집 앞 현관에 도착했다. 박스 하나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산타할아버지 보따리에 담겨져 도착했다. 그 중 3개의 박스 안에는 그 이후 오랜동안 읽혀지지 않을거라는 운명을 알지도 못하는 건축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난 다시 그 책들을 보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책들이기에 반갑고,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다. 지금은 거장이 되어 있는 건축가들이 그 책들 속에서는 지금의 나같은 젊은 건축가들이었다. 그들의 초기작들을 보면서 한 건축가의 초심을 엿볼 수 있고, 그 책들을 처음 들었던 내가 어떤 생각들을 했었는지 발견할 수 있다. 건축 공부를 시작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은 건축과가 신입생이다. 같이 공부를 시작했던 많은 친구들의 얼굴들이 주마등처럼 뱅글뱅글 스치듯 지나간다. 그들과 오랜만에 만나는 날 난 또 얼마나 젊어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