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을 마치고 뉴욕에 와서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4년이 지났다. 대학원 졸업학기 때, 과연 내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일해보고 싶은 사무실들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회사와 프로젝트들이 맘에들고 그곳에서 열심히 일해보고 싶다며 직접 우편으로 편지와 포트폴리오를 보낸 회사들 중 다섯군데에서 인터뷰를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SOM, Rogers Marvel Architects, 1100 Architects, Polshek Partnership, and Cook+Fox. 운좋게도 SOM과 Rogers Marvel Architects 에서 오퍼를 받을 수 있었고, 여러 고민 끝에 Rogers Marvel에서 뉴욕에서의 첫 사회경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Rogers Marvel 에서는 궂은일 마다않고 시켜주는 일을 열심히 하며,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Shuji 라는 친구는 지금도 종종 만나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형같은 선배이다. 일도 재밌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참 많은 회사였지만 경제상황이 안좋았던 2009년 회사를 떠나야 했고, 운좋게도 그 당시 SOM에서 일하던 친구덕분에 다시 SOM과 연락이 되어 회사를 옮길 수 있었다. 결국 뉴욕에 와서 고민하던 두 회사 모두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무언가 운명적인 이유 때문에 이렇게 SOM으로 옮기게 된 게 아닌가 하며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항상 궁금해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SOM에서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발견한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대학원 동기들인 영섭이와 진영이, 이 회사에서 알게된 재영이, John Locke, 현대, 제일이, 도환형님, 우현형님, 봉환형님들과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이 회사에 와서 얻은 의미있는 경험 중 하나는 New School University 란 프로젝트 팀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첫 디자인단계부터 공사를 시작하는 즈음까지 3년간 참여할 수 있었다. 매우 바쁜 프로젝트 스케줄 덕분에 SOM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 프로젝트를 하며 보냈다. 지금도 14번가와 5번 에비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이 건물을 지날때면 항상 자랑스럽고 바쁘게 일하던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어쩌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장면이 이 회사를 다니며 펼쳐진다. 이 회사로 옮기게 된 진정한 이유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날,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바쁜 프로젝트 스케줄 덕분에 그녀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었고,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인연은 오늘 하루 우리 가족의 삶을 가득 채우는 행복으로 이어지고 있다.
The New School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무렵 대학원 선생님이셨던 Toshiko Mori가 운영하시는 사무실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SOM을 나와 나의 뉴욕 실무기간동안 가장 많은 배움을 얻은 Toshiko Mori Architect로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유학 오기 전, 미국으로 대학원 지원서를 보내고 결과를 기다릴 무렵, Toshiko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로 합격 소식을 알려주셨다. 새벽 1시쯤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합격소식을 듣고 감사하다고 말하며 머리숙여 인사하는 나의 그때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고 두근거리는 내 인생의 추억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 그렇게 시작된 Toshiko 선생님과의 인연 덕분에 Toshiko Mori Architect에서 5년동안 일하면서 브라운 대학교 환경과학 연구동, 뉴욕주 북부에 한 미술관장을 위한 주택, 그리고 맨하탄 한켠에 자리잡은 극장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토시코 선생님 사무실에서 일한 지 5년째가 되었을 때 즈음, 독립해서 내 사무실을 열고싶은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오래동안 생각해왔던 일이었고, 토시코 선생님 밑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디자인부터 시공까지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할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다. 하지만 뉴욕에 와서 일자리는 얻을수나 있을까 하며 고민하던 내가 건축회사를 차린다는 것은 망상같은 일이라는 생각도 버릴수는 없었다. 곧바로 시작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대보다는 걱정의 충고를 더 많이 듣는 가운데 대학원 친구인 도영이형을 통해서 Ennead라는 회사에서 나와 비슷한 경력의 건축가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좀더 큰 회사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팀워크와 리더쉽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뷰에 응했고 이 회사 한켠에 내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Ennead란 회사는 원래 Polshek Partnership이란 이름의 회사였는데 회사의 창립자였던 James Stewart Polshek이 은퇴한 후 9명의 젊은 파트너들이 이끌면서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9명의 신을 의미하는 Ennead란 새로운 이름 회사이름으로 바뀐 젊지만 오랜 경력을 담고 있는 건축회사다. 내가 뉴욕에 처음 인터뷰 하러 왔을 때 Polshek도 그 중 하나였지만 인터뷰하러 가는 날 인터뷰 올 필요 없다며 나에게 퇴짜를 준 회사였기에,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나름 내 뉴욕 삶에서 오래전부터 계획되었던 것이었다. 뉴욕에 있는 Rose Center, Brooklyn Museum, Carnegie Hall, Standard Hotel, Newtown Creek Wastewater Treatment Plant 등 주요 공공건물들을 디자인한 이 회사에서 미국 내 프로젝트들을 경험하게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프로젝트는 중국 샹하이에 있는 오피스 프로젝트였다. Ennead에서 일하는 지난 6년간 내 손을 거쳐간 샹하이의 오피스 건물들은 우리 가족 모두의 손가락 발가락으로도 모자랄 만큼 많다.
Ennead에서 6년간 일하는 동안 Peter Schubert 란 파트너와 많은 프로젝트를 같이 했다.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중국 오피스 프로젝트 이외에 다른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싶었는데 막상 회사를 떠날 때 즈음에는 중국 프로젝트를 많이 하시는 Peter와 함께 일했던 기억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고, 그 분 덕분에 꾸준하게 오피트 타워 프로젝트타입에 관한 경험을 쌓은 것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회사를 떠나는 마지막 주에 인사를 드리러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 함께 작업했던 공모전 스케치를 들고 가서 돌려주려한다 했더니, 나보고 들고 가라고 하시며 사인도 해주셨다. 2016년 부터 2022까지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했고, 많은 것들을 배웠으며, 함께 만든 수많은 추억들 덕분에 마지막 회사를 나서는 길이 무거웠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나의 도전은 내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14년간 회사에 몸담고 살아온 삶의 패턴에서 조건축이라는 건축회사를 운영하는 삶의 패턴으로 변경하는 데는 적응기간이 적잖게 필요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찾을 수나 있을까 했는데 운좋게도 맨하탄에 있는 주택 개축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꿈꿔왔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대학원을 마칠 즈음 과연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던 내가 지난 14년간 크고작은 회사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지금 난 14년전과 같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궁금하다. 14년 이후의 나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 그때 내손으로 쓰게 될 조건축의 이야기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