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살면서 내가 알게 되는 사람들과의 만남들은 모두가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그 중에서 어렸을 때 만난 사람들, 종종 연락하며 지내는 오랜 친구는 내 삶에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친구들 중에서 함께 공부하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정환이와의 추억들은 내 삶을 더욱 의미있고 즐겁게 해주는 것들 중 하나이다. 오늘 그 친구이야기를 시작한다.
지난 두달간 정환이와 함께 건축 디자인 공모전에 참여했다. 작년에 함께 공모전 하나를 시작했다가 끝내지 못한 기억이 있어 언젠가 다시 그 아쉬움을 지울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랬는데 바로 그 기회가 두달 전에 우리에게 왔다. 작업을 다 마무리하고 뒤를 돌아보니, 오랜만에 오랜 친구와 참 즐거운 시간을 보낸거 같다. 둘 다 낮에는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밤에 짬내서 공모전 내용을 파악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안을 만들고, 안이 바뀌고, 맘에 안들고, 다시 정신차리고, 중간에 휴가도 다녀오고, 그러다가 방향이 잡혀서 결국 잘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는 마감 못했던 지난번 기억을 뒤로 할 수 있을것 같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우리는 서로 다른 대학으로 가는 게 아쉬워, 대학 대신 같은 재수학원에서 일년을 더 함께 공부했다. 재수기간동안 정환이와 좀 더 친해졌고, 건축학과에 합격해서 나란히 건축가의 길을 시작했다. 학기말이 되면 집 앞에 있는 준호프라는 치킨맥주집에서 서로 작업한 프로젝트의 모델을 갖고 나와 나름대로의 건축가의 눈과 귀, 입을 만들기위해 서로 썰을 풀곤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한참 담배피던 시절인데 준호프 아저씨께서 나눠주신 담배 한개피가 지금도 참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졸업학기가 되었을 때에는 서로 졸업작품을 마무리하는데 도움을 주면서 각자 학교에서 밤을 새었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중에 하나가 정환이의 모델을 만드는데 계단 하나가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낮았는데 건축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함께 도와주러 온 형석이란 친구와 함께 이걸 어떻게 바꿔야 하나 하며 함께 한바탕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을 마치고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을 때에도 정환이와 함께 미국에 와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방학만 되면 정환이를 보러 Providence에 자주 갔고, 정환이도 내가 있었던 보스턴에 종종 놀러오곤 했다. 서로 서투른 영어를 갈고 닦기 위해 서투른 영어를 서로에게 써가며 전화했던 기억은 생각할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함께 뉴욕에도 가보고, 엑시터에 있는 루이칸 도서관, 로체스터에 있는 루이칸 채플 등도 보러 가고,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버팔로에 간적도 있었다. 스위스에서 잠시 머물던 시절에는 기타와 T자를 등에 매고 나타난 정환이와 같이 먹고 자며 몇일을 보냈었다.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면 집에서 띵가띵가 기타치며 노는 정환이를 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환이가 떠나던 날, 서로 아쉬어 포옹하고 끝인사를 나누는데 아무소리 없이 들어온 ICE 고속열차는 역시나 아무소리 없이 떠나버려 정환이는 다음 열차를 타야했다. 기차를 바로 앞에 놓고 기차를 놓치는 그 추억은 생각할때마다 웃지 않을 수가 없는 우리들의 추억의 코메디가 되었다. 참 많은 추억의 장소에 정환이와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공모전을 걔기로 그동안 우리가 함께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리고 우리 앞에 펼쳐진 끝없는 건축가의 길을 걷는데 정환이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길동무인지를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정환이와 함께 있을 또다른 추억의 장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이 친구에게 더욱 고맙고 오늘하루가 더 흐뭇하다.